
Susan Sontag 1933.01.16 ~ 2004.12.28 20세기 후반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이며, 철학적 성격의 문예 및 예술평론, 영화감독 등 다양한 문화계 활동을 한 인물이다. 사회문제 및 인권활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거침없는 투쟁과 비판으로 권력에 저항하는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해박한 지식과 특유의 감수성으로 뉴욕 지성계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66년 평론집 "해석에 반대한다"로 미국 문화계의 중심으로 떠올랐으며 소설보다 평론, 사회비평, 에세이에서 더 많은 활약을 보였다.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 사진에 대한 수잔 손택의 미학적 통찰을 담은 에세이. 사진을 찍는 행위, 혹은 사진 그 자체, 카메라, 사진과 시간 등 다양한 관점에서 저자의 생각들을 풀어놓은 에세이다.
서문
그 사람의 삶에 끼어드는 것이 아니라 방문하는 것, 바로 그것이 누군가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의 핵심이다.
마르크스는 세계를 변화시키려고 하기보다는 세계를 해석하려고만 하다는 이유로 철학을 질책했다. 그렇지만 초현실주의적 감수성의 테두리안에서만 작업을 해 온 여러 사진작가는 세계를 해석하려는 노력조차도 공허할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보다는 세계를 수집해야한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 왜 세계를 해석하려는 것이 공허하다고 여겼으며, 왜 수집해야한다고 생각했을까?
→ 세계를 해석하는 것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그 현상 자체를 보려고했을까?
사진이 도덕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는 그에 상응하는 정치의식이 존재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새로 가르쳐준 사진은 무엇이 볼 만한 가치가 있는가, 우리에게 관찰할 권리가 있는 것은 무엇인가 등을 둘러싼 관념 자체도 바꿔버렸고, 더 넓혀줬다. 바라본다는 것의 근본 원리, 좀더 중요하게는 바라본다는 것의 윤리를 말이다.
(사진은) 우리로 하여금 세계의 모든 것을 우리 머릿속에 붙잡아둘 수 있다고 생각하게끔 만든 것이다. 사진을 수집하는 것은 세계를 수집하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세계가 특정한 관계를 맺도록 만드는 것인데, 이 과정을 통해서 마치 자기가 어떤 지식을 얻은 듯, 그래서 어떤 힘을 얻은 듯 느낀다는 것이다.
💬 사진을 찍으면서 느꼈던 묘한 심리를 설명해주는 대목이라 기억에 남는다.
특히 나는 여행지에서든지 무언가 기억하고 싶은 것을 마주할 때 사진을 찍는데, 이 때 사진을 찍고 나면 무언가 내 눈앞의 이미지를 내가 ‘소유했다’ 혹은 ‘정말 어디엔가 담아두었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훗날 이러한 심리가 완전히 드러났던 것은, 정말로 소유하고싶은 대상을 구매하기 망설여질 때 대신 사진을 찍게 되는 습관이었다. (나중에는 이게 다 소유욕이구나, 싶어서 부질없는 사진들을 지우면서 이런 습관을 버렸다.)
사진은 이 세상의 크기를 마음대로 갖고 논다. 사진은 축소하거나 확대할 수도 있고, 수정하거나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버릴 수도 있다.
회화가 책에 복제될 때보다는 원래의 본질적인 특성을 훨씬 덜 잃는다. 하지만 아직까지 책은 사진을 한데 묶어 널리 알리기에는 완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 쪽수 순으로 사진이 쭉 실려있기는 하나, 꼭 그 순서에 따라 사진을 봐야만 한다거나 각 사진을 얼마동은 들여다봐야한다고 강제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진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인구를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현대 국가의 유용한 도구가 되어왔다.
→ ‘사진’ 은 서로 다른 성격의 일을 위해 찍히기도 한다. ‘사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성격은 아주 달라질 수 있다고 느꼈다.
즉석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수첩처럼 손쉽게 재빨리 뭔가를 기록할 수 있는 것이 사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브라우니 카메라로 일상생활의 순간을 찍어 추억하려는 사진광과 별다를 바 없다.
‘일상생활의 순간을 찍어 추억하려는 사진광’ = 나라서 살짝 찔렷던(?)구절이다.
물론 스마트폰이 발달하면서 나도, 많은 사람들도 메모장 대용으로 사진을 찍어 기록하기도 한다.
사진을 이러한 목적으로 사용(?)하는게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고, 훌륭한 사진가의 거장(예술가)에 대해 얘기하며 나온 작가의 생각이었다.
‘사진’이라고 한다면 예술 사진, 상업 사진, 보도 사진, 증명 사진, … 등등 수 많은 서로 다른 목적성을 가지고 찍은 사진들이 있다. 똑같은 사물을 담은 사진이라고 해서 찍은 사람의 의도에 따라 다른 사진으로 분류될 수
카메라는 현실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포착한다는 생각도 존재하지만, 사진도 회화나 데생처럼 이 세계를 해석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자아의식을 싹 없앤 채 비교적 별다른 생각 없이 아무것이나 사진에 담는다 해도,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에 내재된 뭔가를 가르치려는 태도는 줄어들지 않는다.
회화에 비해 사진은 있는 그대로 대상을 담는 것 같지만, 결국 사진을 찍는 사람의 시선과 대상에 대한 생각이 카메라를 통해 사진에 담기게되며, 그 사진이 현실과 같다고 할 순 없다.
이처럼 사진은 경험을 증명해주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경험을 거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진으로 찍기 좋은 것들을 찾아다니는 일만을 경험이라고 생각하게 되거나, 경험을 일조의 이미지, 일종의 기념품과 맞바꿔버리려고 하게 되니 말이다. 그러니까 여행이 고작 사진을 모으는 수단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사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여행 도중 흔히 격해질지도 모를 혼란스러움을 진정시켜주고 완화시켜주는 활동이다. 여행객들은 여행 중 마주치는 것에 모두 주목하려하고, 앞뒤 재지않고 사진을 찍어댄다.
사진 촬영은 일에 쫓기는 사람들의 휴가 중이나 즐겁게 시간을 보내야 할 때마다 느끼곤 하는 불안감을 달래주기도 한다. 자신의 일과 유사하면서도 친숙한 무슨 일인가를 해야 하는데, 사진 찍기를 바로 그런 일로 여긴다.
정말 너무너무 공감되며, 나 또한 이런 사람이었다. 때론 사진에 너무 집착하는 것이 싫었고 감상하는 것보다 사진을 ‘찍는’ 그 행위에 더 몰두하게 되는 것이 어느새부턴가 실헝져서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을지 말지를 고민하며 사진을 언제부턴가 잘 안찍게 되기도 했다. 사진을 찍는 것도 결국 소유욕의 일종 같았기 때문이다.
‘남는건 추억뿐’이라는 말로 사진을 마구 찍어대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때부터 ‘정말 간직하고 싶은 것만 찍자’는 신념(?)이 조금씩 생긴 것 같다.
특히 이미지 소비가 너무 과한 요즘에 더 생각해볼만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 끊임없이 분주해야하는(하게 보여야하는) 강박을 갖고 있는 현대인들이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는 심리에 대해 설명해준 부분이 매우 공감되었고 흥미로웠다.
사진을찍는 행위는 수동적으로 관찰하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